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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상하이, 그 화려함의 잔인성에 대하여

달콤블 2013. 7. 22. 18:33

[정글만리] 상하이, 그 화려함의 잔인성에 대하여

 

올해 3, 주로 역사소설을 써오며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진득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내왔던 조정래 작가는 온라인 연재라는 파격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책도 전자기기로 읽는 시대에 아직도 원고지에 펜으로 일일이 쓰는 것을 고수하고 있는, 그런 작가가 온라인으로 연재를 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던 작가의 신작이 가리키는 무대는 전남 벌교나 전북 김제가 아닌 '상하이'였다. 대하소설 3부작 중 하나인 '아리랑'을 쓰기 위해 1990, 한중수교가 성립되기도 전, 취재를 위해 만주에 갔다가 '소련은 망했는데 왜 중국은 망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벌써 23년 전부터 구상을 하고 있었다는 '정글만리'. 중국의 건재함의 이유를 찾은 그가 마음에 품은 곳은 상하이였다. 상하이는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중국이나 상하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상하이', 그저 '중국의 대도시'중에 하나일 것이다. 베이징, 톈진, 충칭과 함께 중국의 4대 직할시로 뽑히는 상하이는 실제로 인구 2300만에 면적 6341㎢를 자랑하며 이 면적은 곧 서울의 10배에 해당한다. 하지만 상하이는 이러한 사실들 말고도, 특별한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 구글지도 참조


1950 6 25,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3 1개월간 지속된 이 전쟁은 우리나라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다른 나라로부터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서려면 최소한 100년은 걸릴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고 우리나라를 구조하기 위해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지원이 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2013년 현재. 우리나라는 소위 말하는 '선진국' 중 하나이며 동아시아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하고 이런 작은 땅덩어리로 G20에 속하게 된 나라이다. 하지만 이런 급성장을 하게 되는 바람에 우리나라엔 크고 작은 문제들, , '급성장의 후유증'이 자리잡았고 그 후유증과 양극화를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이다. 화려한 고층빌딩들 바로 옆 빈민가를 볼 수 있는 모순이 자리잡은 곳이라는 것이다.

 

상하이는 이런 우리나라의 역사와 닮은점이 있다. '정글만리'를 보면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상하이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야경만큼, 상하이라는 도시가 가진 화려함은 여행가들이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다'라는 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현지에 살지 않는 여행가들이 볼 수 있는 이러한 화려함은 비단 '푸동지역'이라는 지역에만 국한된 이야기이며 이러한 화려함을 가진 푸동지역 밖으로 나가면 꽤나 낙후되어 있어 같은 도시라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이러한 모순됨은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을 떠올릴 만큼 닮아있다.

 

또한 상하이는 20세기에 들어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는데 이 배경에는 여러 서구 열강들의 침탈의 역사가 깔려있으며 상하이의 유럽식 거리인 '와이탄' 지역은 홍콩과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빨리 개방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상하이에는 유럽식 건물들이 눈에 띄게 많고 이러한 점은 좋은 관광자원이 됨과 동시에 상하이의 화려함에 한 몫을 더하고 있는데, 중요한 점은, 지금 이렇게 화려해 보이는 이 지역들은 조성된지 20년이 채 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급속성장을 이루는 바람에 중국의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상하이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서구 열강들의 침탈역사와 그 흔적들, 급속한 경제성장, 그로 인한 후유증과 양극화, 화려한 건물들은 거의 2000년대에 만들어 졌다는 점 등등.

 

▲ 구글지도 참조


이러한 점에서, '상하이'라는 무대를 신작의 배경으로 선택한 조정래 작가의 안목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글만리', '비즈니스는 보병의 야전이었다. 야전은 순간순간 상황이 변하는 전투였다. 그 급박함에서 살아남으려면 순간순간 판단하고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란 구절이 나올 만큼 치열한 비즈니스의 세계와 경제전쟁의 실체를 실감나게 그려냈으며 '책을 그리도 많이 읽어 철학적 허무와 예술적 정감과 종교적 자애를 간직했던 사람이 어찌 그렇게 냉혹할 수 있었을까. 답은 하나, 돈이었다. 돈의 악마성은 인성을 그렇게 마비시켜 버릴 수 있었다.'란 구절에서 느껴질 만큼 돈과 돈을 둘러싼 인간들, 그 악마성 짙은 속내들과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오던 것과는 다른 '중국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사실 중국은 '인민공화국'이며 '사회주의'의 나라이긴 하지만 개방적인 역사와 급속한 발전으로 실제로 상하이의 상류층은 우리가 생각하는 폐쇄성 짙은 모습과는 다르게 세련되고 외국문화에 밝은 개방적인 사람들이며 '정글만리' 속 중국인들을 보다보면 이러한 모습을 잘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상하이는, 위에 언급했듯이 중국의 특성을 잘 가지고 있는 도시임과 동시에 우리나라와 많이 닮은 역사를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조정래 작가는 '정글만리'에 대한 구상을 할 때에 이러한 점들까지 생각해 두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연이라 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지 않은가. 8번에 걸친 현지답사와 20년에 걸친 중국연구를 하면서 그가 아주 단순하게 '상하이'를 무대로 설정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글만리'라는 이야기의 무대로 상하이만큼 적절하고 매력적인 곳은 없다.

 




"우리나라가 오늘날과 같이 발전한 것이 지난 70년대부터 40년이 걸렸지. 그런데 중국은 80년대부터 시작해 30년 만에 우리나라 수준과 같아진 거야". 정글만리에 나오는 대사다. 이만큼 정글만리는, 우리나라와 닮아있음과 동시에 중국적인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잔인한 화려함의 도시, 상하이를 무대로 수천년간 국경을 맞대고 살아온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계와 그 역사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중국의 모습을 거미줄처럼 잘 짜아내고 있다.

 

비즈니스와 경제전쟁의 세계를 그려내는 만큼, 고요한 바닷속 폭풍처럼 잔잔한 스토리 속 넘실대는 심리싸움을 너무나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 것을 포함해, 중국을 주시하는 와중에서도, 우리나라와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상하이라는 도시를 선택해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조정래 작가의 혜안에, 나는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다.